1. 페미니즘의 우상
프리다 칼로가 페미니즘의 우상이라고 인식된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다 칼로는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화가이다. (그녀는 1954년 죽었다)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난 때에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을 대표할 인물들을 찾아보았고,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서 표현하는 솔직하고 담백한 여성성 그리고 강한 의지를 높게 평가하고 그들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라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강한 의지는 그녀의 삶을 돌아보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다.
2. 프리다 칼로의 삶
개인적으로 프리다 칼로를 연민의 마음으로 많이 느꼈다. 그녀의 작품을 직접 보기 전에는 공감이 어려웠던 마음도 그녀의 작품을 보면 충분히 공감을 느낄 수 있으니 기회가 있으면 꼭 보길 추천한다. 그녀의 삶을 살펴보자.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가난한 사진사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스탈린주의자로 열성적인 성격이나 우울증이 있어 유모의 보살핌에 자라게 되었다. 다만 그 성격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가 시작되었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성적인 사람이 되었다. 의사지망생이면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공산주의 옹호론자가 되었다. 당시 멕시코 문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유명한 예술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우연히 만나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었으며, 디에고의 영향으로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녀를 시기했나 보다. 18세 때에 큰 교통사고가 나게 되고, 평생 30여 차례나 수술을 받을 만큼 척추, 오른쪽다리, 자궁에 이르기까지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이런 육체적인 고통과 그로부터 발현된 정신적인 고통은 그 후 그녀의 작품에 영감이 되는 주제가 되었다. 그렇게 사모하던 디에고와 결혼을 하였으나 막상 결혼 뒤에는 그를 내조하느라 본인의 작품은 포기하고 생활했다. 그러나 디에고는 너무나 자유분방한 사람이며 프리다의 여동생과 바람까지 피울 정도로 문란한 사람이었다. 이는 그들의 관계를 파경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프리다에게 있어 디에고는 절대적인 사랑이었고, 훗날 다시 결혼하게 된다. 이런 그녀의 삶이 남성에 의해 여성이 억압되는 환경에서 전통을 탈피하고자 한 페미니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기에 충분히 귀감이 되었기에 그녀는 페미니스트들이 찬양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3. 명화 소개
(1) 부서진 기둥
신체의 중심은 그녀가 사고로 몸에 박아 넣은 강철이 척추를 대신하고 있고, 그녀의 전신에는 못이 박혀 있습니다. 이는 그녀가 얼만큼 고통스러운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만큼 우리의 감정에 파고듭니다. 또한 그녀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겪었던 교통사고로 인한 사실뿐만 아니라 디에고에게 받은 상처들이 고스란히 작품에서 표현되는 모습에서 얼마나 그녀가 지쳐있는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2) 두 명의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칼로가 손을 잡고 있고 심장이 연결된 형이상학적이면서 육체적인 고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디에고의 여성편력으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되며 겪은 프리다의 정서적인 고통이 담긴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른쪽 유럽 복장은 디에고와 결혼 전의 프리다 모습이고, 왼쪽은 결혼 이후 디에고의 영향을 받아 멕시코 원주민 의상을 입은 프리다 칼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별 이후의 그림이며, 그녀의 혈액 라인이 잘려나간 것으로 디에고와의 관계가 끊김으로 큰 상처를 받은 그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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