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양미술사

종교미술 바로크시대 루벤스 삶 명화소개

by 새로운출발2023 2022. 12. 9.
반응형

1. 바로크 시대

 바로크 시대는 딱 잡아서 규정하기 쉽지 않다. 혹자는 17세기라고 하는데,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16세기~18세기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미술에서도 특별히 뚜렷한 특징이라고 확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향'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이것이 바로크라는 표현보다는 여유 있게 넓은 의미로 바로크를 바라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 바로크는 흔히 일그러진 진주라는 이베리아 명칭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속임수라는 이탈리어나 잘못된 추론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진주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가진 보석이다. 그런데 일그러진 진주는 조금은 비하적인 표현이다. 실제로 언뜻 일그러진 진주를 보면 별거 아닌 진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그러짐이 부각되어 진주의 가치를 가질 수 없는 별로인 것이다. 여기서 진주는 르네상스를 뜻하고 일그러짐은 바로크를 뜻하여, 바로크 시대를 폄하할 때에 이런 표현이 쓰였다고 한다. 바로크 시대를 가장 잘 알려주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과장, 무한한 공간의 확장, 이어지는 듯한 사선구도, 빛과 어둠을 이용한 극적인 효과, 관람객을 빠져들게 만드는 예술 그리고 가톨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그림들

2. 루벤스 삶

루벤스의 자화상을 보면 부유한 모습이 느껴진다. 루벤스는 상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개신교도로 신앙에 대한 박해를 피해 이주를 하였는데, 정작 루벤스는 고전 교육을 배우며 가톨릭교도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 루벤스가 성장한 안트베르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이탈리아 유학파 화가 오토 반 벤에게서 미술 수업을 받았다. 이는 후에 수년간 그가 이탈리아에 머무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공작 가의 궁정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모사를 통해 고대부터 당대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미술 유산을 익혔다. 우리도 흔히 들어본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등 수많은 대가들을 공부하였다. 더불어 그는 엄청난 재능도 가지고 있었기에 이탈리아에 머무는 기간에 충분히 명성을 얻었다. 미술가들은 살아생전에 고생을 많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 루벤스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화가로서의 성공으로 그는 엄청난 규모의 공방을 운영하였고, 1400여 점 이상의 다작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작을 하였지만 작품들의 질도 아주 좋다. 유럽의 어느 미술관을 가더라도 루벤스의 그림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이다. 살아생전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이름도 남긴 그가 바로 루벤스다. 

3. 명화 소개

(1) 십자가를 세움 

십자가를 세움은 처음으로 루벤스가 받은 제단화였다. 성경의 한 부분을 제작해 달라는 성 발부르가 교회의 요청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당시는 이탈리아에서 명성을 쌓고 루벤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기에 이탈리아 성당의 다양한 천장화의 영향을 받았음이 보인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이 그림의 사이즈는 462x341cm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그림은 보는 것처럼 세 폭으로 나뉘어있고, 중앙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들어 올리는 작품을 '사선구도'를 통해 역동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외에도 명암을 세밀하게 표현했고, 정밀한 묘사 역시 루벤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재창조된 작품이다. 

(2) 십자가에 내려지는 그리스도

 

십자가에 내려지는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주 절제되고 극적으로 그려져 있다. 역시 사선구도를 하고 있고, 명암 기법을 통해 각 인문들의 표정을 볼 수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소설 플란더스의 개에서 화가를 꿈꾸는 소년 네로가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이 바로 이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림을 바라보면 느껴지는 경건함을 사진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3) 노인과 여인

 루벤스전을 관람해본 사람은 시선이 꼭 가게 되는 그림이다. 젊은 여인과 노인의 그림인데 자칫하면 외설적으로 보이며, 무슨 이유로 이런 그림을 루벤스가 그렸는지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의 뒷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림 속에서 노인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고, 그를 가시처럼 여긴 정권은 노인을 감옥에 가두고 음식도 제공하지 않았다. 사진의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그녀는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곧 죽을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 감옥을 찾았으며 굶주린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젖을 아버지에게 물린 것이다. 의미를 알고 보면 그림이 다르게 보이지 않는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