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수파
시대적으로 부유하고 풍요로운 시기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추상화파로 구분된다. 같은 화파로는 독일의 표현주의가 있고, 입체주의도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흔히 색채추상을 야수파라 표현하고, 입체 추상을 입체파로 표현하곤 한다. 야수파는 후기 인상주의에 직접 영향을 받았고 대표적인 특징은 색채의 자유로운 표현과 보색 대비를 통한 강렬할 색채 대비가 일어나고 입체감이 표현된다. 야수파도 전통적인 주제를 많이 사용하여 풍경이나 누드, 인물(자화상 등)을 그렸지만 고전적인 것을 파괴하여 기존과 차별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2. 마티스 삶
마티스는 전공이 미술이 아니었고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었지만 화가로 전향한 케이스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여 많은 화가들처럼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사 등을 하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술학교로 입학하여 그곳에서 색채화가로서의 천재적인 재질이 점점 발현되었다. 그 후 인상파의 영향도 받았고 야수파 운동의 핵심인원으로 자리매김한 계기는 1905년 공동 전시회였다. 당시는 인상주의 시대로 마티스의 작품은 큰 비난을 받았다. 마티스는 느낌을 색으로 표현하는 것에 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이는 인물화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당시 사람들은 마치 사나운 야수와 같이 얼굴이 알록달록하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이를 계기로 야수파라는 이름으로 색채에 중점을 둔 그림풍을 유행시켰다. 마티스는 노후에 암으로 큰 수술을 하였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으나 화가로서의 열정은 여전히 뜨거웠기에 새로운 기법을 연구했고 마침내 색종이의 형태로 만들어서 붙이는 방법, 긴 막대에 크레용을 달아 벽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 등 끊임없이 연구했다.
3. 명화 소개
(1) 모자를 쓴 여인
마티스가 인물화를 기존의 전통적인 색채로 그리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색상과 거친 붓질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작품의 모델은 마티스 아내로, 이 작품을 보고 엄청 화를 냈다고 한다. 그림을 그려준다고 한껏 멋을 부렸는데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푸른색 빛으로 얼굴이 그려졌으니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
(2) 마키스 부인의 초상 혹은 녹색 선
마티스 부인의 초상 혹은 녹색 선은 색채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첫눈에 봐도 인물화에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 선을 통해 그림의 색채 영역을 나눠지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색채의 강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부인의 초상화를 통해 마티스의 야수파적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3) 춤
마티스의 유명한 말이 여기서 나온다. "색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하늘은 파란색, 인물은 붉은색, 그리고 동산을 칠할 초록색이면 충분하다. 생각을 단순화시킴으로써 우리는 고요를 추구할 수 있고, 내가 추구하는 이상은 조화다"라고 말했다. 그림을 통해 보면 인체가 둥글둥글하게 표현이 되었지만 역동적인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은 추후 표현주의와 추상주의에 씨앗이 되는 계기를 이루었다.
(4) 이카루스
말년에 이젤 앞에 서지 못하였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은 그는 색종이를 이용해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카루스다. 이카루스 스토리는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간단히 이야기를 하면, 미로에 갇혔던 이카루스가 동굴을 빠져나와 깃털로 만들어진 날개를 밀랍으로 고정하여 탈출했는데, 하늘을 오르는 즐거움과 더 높이 오르고 싶은 욕망은 그를 태양에 가까이 가게 만들었다.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밀랍은 점점 녹았고 결국 이카루스는 추락한다. 추락하는 이카루스를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파란색 배경은 역시 하늘을 표현하고, 사람의 형태는 검은색으로, 그리고 빨간 점은 인간의 심장, 그리고 마지막 노란색 별 무늬는 날개의 깃털이 날리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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