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현주의
표현주의는 르네상스 이후로 굳어진 규점을 탈피하고자 했던 미술 운동의 하나이다. 흔희 미술은 자연의 재현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거부하는 것이 표현주의자이다. 이들은 감정과 감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선, 형태, 색채 등은 이것을 표현하는 용도로만 이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작품의 구도, 균형의 미 등은 철저히 배제하고 가장 많이 활용한 방법이 왜곡을 통해 본인들의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였다.
2. 에곤 쉴레 삶
에곤 쉴레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화가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쉬운 화가였다. 주로 인간의 육체를 적나라하게 묘사했고, 성적인 욕망은 주제로 다루었기 때문에, 시대보다 너무 앞선 작가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에곤 실레는 16살에 미술 아카데미를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학교를 떠났다. 그 후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협회를 창립하고 주로 여인들, 소녀들의 누드화를 아주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드로잉 하였다. 아무래도 20세기 초에는 이런 것들이 예술이라기보다 외설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그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스승인 클림트의 가까운 친구인 만큼 클림트의 영향으로 표현주의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고, 클림트 사후에는 그의 자리를 이어받을 만큼 뛰어났다. 그 시기가 고작 20대 중반이었다. 또한 그 시기에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곧 아기가 태어날 예정으로 그의 그림도 변화의 시도가 있었을 무렵,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와 아기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로 인해 슬퍼하던 실레도 바로 3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아쉽게 역사는 또 한 명의 훌륭한 화가를 잃었다.
3. 명화 소개
에곤 쉴레의 작품은 굉장히 적나라한 것이 많아서 필터를 하고,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1) 자화상
아마도 이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한 번쯤 이 그림을 본 적이 있을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바로 이 작품이 에곤 쉴레의 작품 자화상이다. 본인의 모습을 역동적인 선을 통해 과감하게 표현하였다. 평면적인 구성으로 드로잉의 느낌이 살아있어서 많이 익숙한 그림과는 다른 느낌을 전해 준다.
(2) 죽음과 소녀
이 그림은 에곤 쉴레와 그의 모델이었던 발리 노이칠과의 이별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발리는 에곤 쉴레가 화가로써 유명하기 전부터 그를 위해 헌식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쉴레가 유명해지자 정작 결혼은 부유한 집의 자녀와 해버리며 그들의 관계는 끝을 맺는다.
그림을 살펴보면 두 사람이 서로를 안고 있는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자는 남자에게 매달리며 매우 적극적인 모습인 반면 남자는 왼손으로는 머리를 안고 있지만 오른손은 여자를 밀쳐내는 모습이 꽤 단호하게 느껴진다.
(3) 가족
결혼 후 가정이 안정적이고, 아내 에디트가 임신을 한 때에 그린 작품이다.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이 그림은 애초 아기가 있는 자리에 꽃다발이 그려져 있었고, 웅크리오 앉은 한쌍이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후에 에디트가 임신한 소식을 들었던 에곤 쉴레는 꽃다발 자리에 아이를 덧그려 넣었다. 안타깝게 유럽 전역을 휩쓴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와 아기가 세상을 먼저 떠나고, 슬픔 속에 에곤 쉴레도 3일 뒤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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