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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알브레히트 뒤러 : 자화상 독일미술의 아버지

by 새로운출발2023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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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일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를 소개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중세에 활동했던 화가이기 때문에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뒤러는 매우 유명환 화가이고, 북유럽에서는 레오나르도로 불릴 정도이니 가히 그의 능력을 갸늠해볼수 있다. 

 

  • 알브레히트 뒤러
  • 최초의 자화상
  • 잊혀진적 없는 독일미술의 아버지

Albrecht-Dure , 1471-1528

알브레히트 뒤러

당시에 독일의 위치에는 신성로마제국이었다. 뒤러는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 전환기를 무대로 활동한 화가로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미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업적을 어떤 화가도 뛰어넘지 못할 정도라고 전해진다. 뒤러는 뉘른베르크라는 제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있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제국의 두 번째 도시라고 하면 당연히 학문, 문화, 과학, 무역 등이 매우 발달한 국제적인 도시였다. 뒤러의 아버지는 같은 이름의 뒤러로 직업은 금세공사였고 당연히 뒤러도 금세공사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5세가 되면서 그림으로 직업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고 볼게무트의 도제로 4년의 세월을 보내며 제단화와 종교화 등 당시 미술전반을 배웠다. 당시에는 도제가 장인이 되기 전에 타도 시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시험했던 관례가 있는데 뒤러 역시 19세에 4년간 그 과정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뒤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정말 내용이 무궁무진한데 그의 미술영역 중에서 본인의 창의력이 가장 빛난 부분은 판화로 전해진다. 당시는 르네상스 시대로 이탈리아에 모든 유명한 화가가 있었는데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 중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최초 화가라고 불린 계기가 바로 판화였다. 그가 만든 기독교 목판화 연작이 대 히트를 친 것이다. 가장 성공한 것은 요한계시록을 목판화로 제작한 것인데 시대적인 배경에 맞아 엄청난 성공을 하게 되었다. 당시는 세기가 전환되는 상황으로 겉으로 보면 아무 이상 없이 잘 돌아가는 것 같았으나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는 불안했던 종교개혁 직전으로 알려진다. 또한 중세시대의 전염병은 우리도 많이 알고 있듯이 계속 하나씩 나왔기 때문에 당시 프랑스에서 발생되었다는 매독도 독일에 들어왔고 이단의 고문이나 공개처형 등 종교박해도 여전히 많았다. 이런 상황이니 종말을 다룬 요한계시록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자화상

뒤러는 최초의 자화상을 그렸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서양 미술사에서는 최초의 독립 자화상으로 본격적인 회화가 그려진 것이다. 뒤러 이전에는 대부분 그림 한 구탱이에서 관람자를 바라보는 인물이었는데 이제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자화상 관련 그의 기록은 또 있는데, 그가 13세에 그린 자화상은 드로잉이지만 그 당시까지는 최연소 자화상 작품이었고, 미술사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린 것도 뒤러였다. 최초의 자화상은 1493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집안끼리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그의 또다른 최초 기록은 편지, 일기 등을 기록으로 남겨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 최초의 북유럽 화가이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간 최초의 북유럽화가이기도 하다. 

 

잊혀진적 없는 독일미술의 아버지

뒤러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 대저택에도 살았고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고 외교관 역할도 하며 경제적인 이익은 당연히 따라왔다. 다만,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서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는 사망한 뒤에 절대 이름이 잊힌 적이 없었다. 그의 판화들은 전유럽에 끊임없이 모사되고 복제될 만큼 화가지망생들의 관심을 받았고, 종교전쟁시기에서는 구교와 신교 가릴 것 없이 그를 이상적인 미술가로 칭송했다. 낭만주의 시대가 18-9 세기에 왔을 때는 낭만주의 선조로 불렸고 독일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학문적인 연구도 활발했다. 20세기에는 그에 대한 연구서도 작성되었으며 그의 작품에 대한 기념비적인 이야기도 나오게 된다. 현재에도 독일에는 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데, 1840년에는 그의 동상이 뉘른베르크에 세워졌고, 주변은 알프레히트뒤러 광장으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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