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의 사계를 구분할 수는 없지만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 옛날 사람이라 그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을 뿐인데 정확한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다. 미술은 눈으로 보고 느끼고, 음악은 귀로 듣고 느끼는 예술이니 시간이 될 때 들어보도록 하자.
- 바로크시대의 유명한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
- 사계의 대표작품은 바로 <봄 제1악장>
바로크시대의 유명한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
음악사에서 알려진 내용 중 하나를 이야기하면 특히 바로크시대의 많은 작고가 들은 이름과 음악이 한동안 잊혔다가 20세기 이후에 다시 드러나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20세기 전반에 레코드가 나오고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현대 음악이 급속히 변화하였기 때문에 오페라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바로크시대 음악은 자연히 조명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무대와 대본이 필요하지 않은 소리영역이 새롭게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오페라가 재발견되면서 많은 오페라가 연구되었고 그 가운데 그가 작곡한 작품이 본격적으로 진가를 인정받게 되었다. 대표작품이 바로 사계 봄 제1악장이다. 비발디는 칠삭둥이로 태어났다. 그래서 부모는 그가 금방 죽을 것이라 여겼으나 백일을 넘기고 죽지 않자 그제야 유아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그는 9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대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래서 그가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고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12살이 될 때에는 자신의 상사였던 음악감독이자 작곡가인 조반니 레그렌치에게 음악을 배우게 해 주었다. 그러나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음악으로는 9남매를 키우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었다. 그래서 15살에 첫째인 비발디를 가톨릭 사제로 만들고자 수도원에 보냈고 건강이 약했던지라 남들은 6-7년 정도의 과정을 10년을 채우고서야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제로서 직무에 충실하지 않고 주로 바이올린 연주에 심취하고 건강을 핑계 삼아 미사집전을 거르는 날이 많았던 그는 1706년부터는 아예 미사를 집전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게으른 변명쟁이라고 할 수 없는 게 그는 정말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바로 천식 때문이었다. 실제로 미사 중에도 기침을 많이 하여 미사진행이 어려움을 겪은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사제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아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임명된다. 고아원은 말이 고아원이지 규모가 크고 교육 수준이 높은 기관이었다. 또한 가톨릭으로부터 충분히 지원을 받았고 직원에 대한 처우도 좋아서 비발디는 부임하자마자 아버지 연봉의 4배가 넘게 급여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급여가 점점 더 빠르게 올라갔고 바이올린에서 시작하여 음악 전체를 총괄하는 위치까지 오르게 된다. 비발디의 영향으로 학교 음악 수준은 크게 향상되었고 전국 순회공연까지 할 정도가 된다. 비발디가 본업을 떠나 음악에 몰두함에 따라 교황청은 그를 성직 집무권을 박탈하고 미사집전을 하지 못하게 했는데 사실 이건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준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오페라 작곡을 하며 승승장구하게 되지만 50을 넘기며 갑작스럽게 몰락하게 된다. 처음에는 바로크 음악이 저물고 고전파 양식이 대두되며 비발디 음악이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여겨졌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가 큰 투자를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궁핍한 생활을 하던 그는 오스트리아에 가게 되었으나 그곳에서도 그의 공연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실의에 빠져 지병인 천식이 악화되어 객사를 하였다. 그가 죽고 음악가 비발디는 사라졌고, 200년 뒤 바흐의 편곡집이 세상에 나오면서 비발디 음악이 주목을 받게 된다.
사계의 대표작품은 바로 <봄 제1악장>
대부분 일반사람들은 비발디의 작품 중 사계를 제외하고는 잘 모르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비발디를 그냥 평범함 작곡가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많다. 오죽하면 비발디를 이렇게 이야기 한 사람도 있다.
비발디는 작품을 수백 개 쓴 게 아니라
한 곡을 수백 번 베껴 쓴 사람이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20세기 초반까지는 이런 분위기 였다고 한다. 그러나 비발디는 그런 작곡가가 아니라 음악사에는 엄청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바흐가 그를 열심히 공부하고 편곡한 것이 그 반증이 된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은 거의 모두가 정형화된 작법으로 빠르게 곡을 썼다고 한다. 특히 저작권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곡을 사용하거나 남의 곡을 가져오는 것도 매우 빈번했다고 한다. 그는 피에타 학교를 위해서도 곡을 썼지만 당시에도 유명한 작곡가로 이름이 나서 출판의뢰와 작곡 요청이 쇄도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음이 자명하다. 비발디의 사계는 사계절의 풍경과 변화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분위기를 풍부한 상상을 통해 자유롭고도 간결히 표현한 음악이다. 특히 알려진 것은 봄 제1악장인데 이는 광고에 쓰인 음악이라서 더 그렇다. 그리고 사계를 연주한 앙상블 이 무지치의 연주가 아주 유명하다. 1951년 결성된 이탈리아 현악 앙상블로 바로크에서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레파토리를 연주하고 전 세계 음악팬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감상을 하면서 다가오는 봄을 느껴보도록 하자!
[출처 : Youtube 'TV예술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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