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인상주의 화가인 고갱은 평생을 유명해지고 싶어 했다. 그 방법을 원시적인 순수한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어 했지만 당대에는 그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한 이가 없었고 유럽의 좋은 기후환경을 떠나 열대의 섬에서 죽음을 맞이하였고 결국 그의 사후에 그의 많은 명화들은 재평가를 받았는데, 미술사에는 이런 일이 워낙 많다.
1. 탈인상주의 고갱 삶
프랑스 후기의 인상파 화가로 알려진 고갱.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고 할 만큼 평범하지 않았다. 사실 고갱은 화가가 되기 전에 도선사로 있었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관두고 파리로 돌아와 증권사에 취직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생활이 안정된 뒤 주말에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고 화가로서의 생활도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고갱이 그림을 팔아줄 만큼 여유가 있는 생활을 했는데 주로 많이 팔아준 화가가 그 이름도 유명한 카미유 피사로다. 일전에 소개를 했으니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가 정식으로 화가로 데뷔한 것은 35살 무렵인데 아무래도 그 시기가 금융위기로 증권사의 많은 직원들이 직업을 잃었고, 부인역시도 그녀의 고향인 덴마크로 돌아갔는데 고갱은 당연히 따라갔지만 그곳에서도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아내의 가족들에게 쫓겨나서 프랑스로 돌아온 뒤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고갱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 보여주길 준비했지만 쉽게 만들지는 못했고, 유럽에서 가능성을 그는 찾지 못하여 파나마로 갔으나 그곳 역시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파나마 다음으로 간 마르티니크 섬에서의 몇 달이 그의 스타일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 프랑스로 돌아와 열렬히 본인을 따르고 좋아하는 고흐와 친구가 되었지만 그들의 결말은 좋지 않았다. 알겠지만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르는 자해사건이 있었고, 고갱은 그 뒤 그곳을 떠나고 고흐를 다시는 보지 않았다. 이후 다시 한번 유럽을 떠나 타히티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원주민들을 그리며 본인의 그림을 또 체득하지만 정작 프랑스에스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섬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족족 프랑스로 보내서 친구들이 팔아주었지만 그의 생활은 궁핍함 그 자체였다. 그러다 결국 마르키즈 제도의 히바 오아까지 갔으나 결국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갱은 꽤나 허풍이 심했기 때문에 그의 글이나 작품설명은 어느 정도 걸러서 들어야 한다. 다만, 자연 그대로를 그리지 않고 본인의 경험과 상상을 그림에 그려낸 그의 작품은 표현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고, 현대문명이 아닌 자연이 보존된 원시를 더 중점을 두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2. 명화소개
(1) 황색의 그리스도
고갱이 타히티섬에 가기 전에 그린 최고 걸작 중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상징을 닮고 있는데 노란 예수상과 갈색 십자가 그리고 세 사람의 브리타뉴 여인과 뒷 배경의 붉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모습에서 영적 세계와 현실 세계로 외적인 면과 내적인 면이 종합되었음을 알려준다. 종합이라는 말은 고갱이 제일 많이 쓴 말이기도 한데, 이는 그의 표현기법이나 내용 모두에 적용하여 쓰곤 했다. 기법적으로는 세세한 붓놀림의 분석적 기법과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처럼 색과 형태를 단순화하고 간결하게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있고, 내용적으로는 현실과 상상 세계가 한 그림 속에 종합되어 나타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종합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2)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타히티에 머물 당시 그린 이 작품은 왼쪽 위 여백에 친절한 설명이 있다.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는데, 오른쪽에 가장 먼저 세명의 여인과 아이가 누워있고 이는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가운데는 젊은 시절의 일상을 보여주는 활동들이다. 그리고 가장 왼쪽에 고뇌가 있는 흰머리 노인은 말년을 표현한다. 종합주의 특징을 위해 그림 뒷부분 파란색들은 현실을 초월한 것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는 다시는 이 작품을 능가하는 그림을 그릴 수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가 삶의 끝에 있는 기간에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고, 당시 그가 사랑한 딸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 화가로 성공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 그리고 자살시도까지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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