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로 거슬러 가면 르네상스가 나온다. 르네상스 하면 미술에서 선구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얀 반 에이크를 만나볼 수 있다. 그는 리얼리즘을 기본으로 종교적인 신앙을 표현한 종교화나 초상화를 많이 남겼고, 대표적인 작품이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이다.
- 결혼증명서
- 얀 반 에이크
- 중세결혼식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결혼증명서다.
중세시대에 그려진 위 작품은 아르놀피니와 체나미의 결혼식을 증명하는 초상화로 결혼증명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작품을 살펴보면 아르놀피니는 엄청 표정에 힘이 가득한데 솔직히 눈은 뱁새눈이고 사시에다가 눈썹도 없다. 표정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이탈리아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그가 입은 옷은 왕을 알현할 때 입는 옷이라고 전해진다. 체나미는 성공한 사업가의 딸이고 잘 삐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차가운 면도 느껴진다. 얀 반 에이크는 초상화의 얼굴을 통해 그들의 성격을 표현해 내었다. 여인이 배를 만지고 있고 배가 불러 보이는데 혼전 임신은 아니라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옷깃을 앞으로 여민 것은 본인의 조신함을 상징하고,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것임을 표현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은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즉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결혼증명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당대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얀 반 에이크
유화로 그렸다고 할 때 유화는 누구나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유화를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진 것이 얀 반 에이크이다. 그가 안료를 최초로 기름에 섞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대에는 직접 광물이나 식물등에서 색을 발견하고 이를 가공하여 안료를 마련했고, 그것을 주로 계란에 섞어서 사용했다. 계란에 물감을 섞으면 빨리 마르는 단점이 있었기에 얀 반 에이크는 기름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궁정화가가 될 만큼 당대에 이미 명성을 얻은 화가이다. 그가 그린 초상화들을 후대 회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기존 구도나 양식을 따라가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관찰하여 현실 세계의 세세한 부분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하였고 무엇보다 종교작품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신앙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중세결혼식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를 통해 두 사람이 결혼을 하는 상황이라고 알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귀족들이 화려한 결혼식을 크게 한 것은 아니었고 당시 중세 교회의 신부님이 없어도 증인 2명만 있으면 결혼을 할 수 있고 성립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 속 거울 위를 한번 보자. 라틴어로 쓰인 글은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결혼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화가는 파란 옷을 입었고 조수는 붉은 옷을 입었는데 거울 속 모습을 통해 얀반에이크와 그의 조수가 증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중세 결혼식은 증인 2명만 있으면 결혼이 성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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