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하면 가난하다는 말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때문에 만들어진 것 같다. 그는 매력이 넘치는 잘생긴 남자이고 그만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보헤미안이었다. 동시에 술과 마약에 중독되어 결국 결핵으로 짧은 생을 마친 남자가 바로 모딜리아니의 짧은 인생을 간단히 요약하게 된다.
- 소녀의 초상과 비극
- 비극적인 사랑 모딜리아니
- 성공은 먼 곳에
소녀의 초상과 비극
모딜리아니의 잘생긴 외모를 여자들이 놓아주지 않았는지 그는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려댔지만 최후에 그를 가진 여인은 잔느 에뷔테른이며 특별한 여자였다. 그녀는 모딜리아니와의 사랑에 어떠한 계산도 넣지 않고 순수하게 사랑을 전한 유일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 주인공이 잔느이고 1919년 작품으로 모딜리아니와 잔느 사이에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이고 이미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일 때 작품이다. 어느 정도냐면 겨울에 난로를 피울 수 없을 지경이라 잔느가 친정에 갔고, 모딜리아니가 그녀가 너무 보고 싶을 때면 잔느 집에 갔는데 아무리 집 밖에서 잔느를 불러도 그녀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가 그들의 사랑을 원치 않아 다시 만나길 막았다는 이야기다. 그는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1년 뒤 모딜리아니는 건강이 악화되어 바깥도 며칠씩 못 나갈 지경이 되었는데 어느 날 이웃이 이상한 낌새에 문을 따고 들어가 봤더니 모딜리아니가 초주검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결국 1920년 1월 그는 자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이것만으로도 비극인데 뒷 이야기가 있다.
비극적인 사랑 모딜리아니
모딜리아니가 죽은 뒤 그 소식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알려졌고, 결국 잔느에게까지 전해졌다. 잔느는 모딜리아니가 죽고 나서야 시체 안치실에서 사랑했던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었다. 모딜리아니를 맹목적으로 사랑한 잔느는 그가 죽은 다음날 바로 자신의 집 6층에서 뛰어 내려서 자살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의 장례는 예술가들에 의해 장엄하게 치러졌고, 잔느는 3년 뒤에 그의 무덤으로 이장되어 결국 영원한 한쌍이 되었다. 모딜리아니는 1월 24일 사망하였고 잔느는 1월 25일 사망하였다. 모딜리아니는 성공을 바로 앞에 두고 가난하게 죽은 안타까운 예술가이며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모딜리아니이다.
성공은 먼 곳에
모딜리아니는 미술은 14세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공부를 하였고 16세 때 1년 정도 병으로 인해 겨울을 따뜻한 이태리 남부에서 생활하였다. 그가 20대에는 파리로 이동하여 예술가의 도시인 몽마르트르에서 살기 시작한다. 그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인전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새로운 그림을 좋아하는 애호가였기 때문에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었을 것이다. 모딜리아니 인물화의 가장 큰 특징인 긴 목에 긴 얼굴, 선이 분명한 얼굴인데 꿈꾸는 듯한 표정은 사람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듯하면서 알 수 없는 가림막이 있는 모습이다. 다만, 그 두 작품이 누드화였고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성공하였지만 경찰관들의 이목도 함께 끌어 결국 철거가 되었다. 만약 이때 그의 작품이 철거되지 않고 가치를 인정받았다면 그가 잔느와 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결핵으로 무의미하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모딜리아니가 재평가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다른 생각도 든다. 모딜리아니가 세상에 살아있을 때 성공은 참 가깝지만 먼 곳에 있는 꿈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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